« Previous : 1 : 2 : 3 : 4 : 5 : ... 33 : Next »

친구가 온다!

친구가 온다!

길 위에서 난 늘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지만, 그 친구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소중한 친구가 내가 있는 이 곳에 온다.

때문에 나는 흥분을 감출 수 없다. 매일 밤 잠을 청하려 누울 때마다 그 생각만 하면 흥분에 잠이 모다 달아나 짜증이 날 정도이다. 올라믄 좀 빨리 오등가.

할 것들 볼 것들이 너무 많다. 하여 친구의 짧은 일정이 원망스럽다. 난 이미 벌써부터 번개처럼 지나가버릴 그 시간들을 상상한다. 아니, 나는 이미 그 시간들이 다 지나가버리고 나 혼자 남을 그 적적한 시간에 존재한다. 네가 오기 전부터 이미 나는 네가 떠나가버린 이 번잡하고도 황량한 도시에 홀로 남았다. 네가 오기 전, 그리고 네가 떠난 후에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그 공허들은 내가 너를 위해 준비할 수 있는 최선의 장식이다.

우리들은 참 병신같이 놀 거다. 마치 스물 여덟이나 먹고나서야 겨우 세상에 태어난 신생아 마냥, 말도 다르고 모든 게 다른 이 곳에서 천진하고도 징하게 놀 거다. 곧 세상에 내던져질 너를 위해 인큐베이터 안의 파티를 준비한다.

그러니 어서 와라. 허나 이 곳은 담배가 비싸다. 한 갑에 육천원이다. 그러니 인큐베이터 안에서 필 담배는 충분히 준비해라.

leaf

2010/08/25 04:35 2010/08/25 04:35

친구들아

서울의 친구들이 보고싶다. 너무나 보고싶다. 만나서 늘 하던 그 말도 안되던 세상에 대한 조롱을 밤새하고싶다. 잘 있니 친구들아? 나는 너를 타지에서 그리워하고 있단다.

leaf

2010/08/14 03:35 2010/08/14 03:35

저는 잘 있어요

중국 동북 지방에서 북경과 상해를 거쳐 지금은 홍콩이에요.

많이 '바빴어요'. 유랑하는 입장에서 이런 표현을 쓴다는 것이 참 머쓱한 일이지만, 정말 그랬어요.
왜 바빴는가를, 그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하지만, 나는 지금 당장도 조금은 바쁘네요.

하지만 너무 오래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 같아 이렇게라도 작은 쪽지를 남겨요.

저는 잘 있어요. 

leaf

2010/08/08 13:45 2010/08/08 13:45

연길의 마지막 밤

배가 도착하는 대련 이후에 대해서는 아무런 계획도 생각도 없던 여정이 어떻게 대련, 하얼빈, 길림, 그리고 연변조선족자치구의 연길까지 오게 되었다. 마치 계단을 내려오듯 가장 번화한 도시 대련에서, 아시아의 파리라고 불리던 과거의 영광을 잃고 지금은 많이 쇠락한 하얼빈, 그리고 그보다 더 외진 길림시, 그리고 두만강 너머의 간도 땅 조그만 도시 이 곳 연길까지. 아, 윤동주의 고향, 용정이라는 작은 동네를 갔던 것까지 포함. 저 앞에 '서울'을 붙이면, 이건 마치 어떤 알 수 없는 '괴물leviathan' 또는 '기계machine'에서 점점 도망쳐 온 기분이다.

그리고 지금 묵는 연길의 시상여관 근처에는 소학교가 하나 있고, 실개천이 가까이 있으며, 그 외에는 딱히 뭐 하나 없다. 주말 밤에도 이 도시는 적막하기 그지없다.

조선족자치구에 가 보고 싶다는 마음은 하얼빈에서부터 들었는데, 왜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떤 나의 동류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하얼빈에서 떠듬떠듬 중국어를 지껄이는 나를 신기해하며 자꾸만 말을 걸던 사람들 사이에서 대화의 감이라도 잡으려면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했는데 그러기를 몇 밤, 그저 타지의 이질감에 너무 빨리 지쳐버렸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연길, 애잔하다. 19세기 중반 수년 간에 걸친 지독한 기근에 두만강을 넘어 온 사람들. 윤동주가 다니던 중학교를 찾아 갔을 때 길을 몰라 지긋하신 분들에게 길을 물었다. 한 할머니는 내게 "조선 사람이야?"라고 묻는다.

말하자면 '조선'이 '우리네'를 묵는 기준이다. 그 말은 한국도 북한, 간도, 어쩌면 까레이스키까지, '조선'이 부서진 조각 중 하나라는 것이다. 마치 북한은 사회주의의 변태적 소산이고 조선족은 이미 중국화 되어 '오염된' 회색의 문화이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가 가능한 한국만이 인간의 존엄을 보장하는 한국 사람의 진정한 국가라는 생각; 뭐 어찌 생각하든 다 좋은데, '한국은 한국'일 뿐이다. 그렇게 보자면 한국 또한 역사상 가장 변태적 이념인 자본주의에 꽤나 오염되고 조선 문화의 (뒤틀린) 변형 중 하나일 뿐이다.

이 곳은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의 인구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이제 스무살이나 되어 보이는 아이들은 무료해 보였다. 그들은 설픈 화장과 어색한 옷차림을 하고 한국에서 온 DJ가 원더걸스를 트는 나이트엘 간다. DJ는 한참 노래를 틀다가 '놀아보자며' DJ박스에서 나와 끝장나게 춤을 추기 시작한다. 저 DJ가 어떻게 이 곳에 오게 되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아마 지방 나이트에서 파장 때에만 노래를 틀다 메인으로 써주는데다 보수도 좀 더 낫다는 제안에 오게 되었을지도. 저 DJ는 한국에서 '파장 시간대'에 노래를 틀다 마감한 뒤, 해가 다 뜬 아침에 들른 김밥천국에서 먹은 떡라면은 어쩌면 이 곳을 떠난 아줌마가 끓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아줌마의 딸은 이 나이트에서 흔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저 아이 또한, 이 곳을 떠나지 못해 흔든다.

아이들은 킬힐을 신고 한국 드라마를 본다. 그럼에도 그들은 어서 중국의 다른 큰 도시로 가고 싶어한다. 모든 간판과 표지판이 중국어와 조선말로 병기되어 있는 것처럼, 이 곳은 화려한 한국의 문화와 자신들이 속한 중국의 현실 안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들이 동경해 마지않는 나의 고향을 생각한다. 이들의 동경, 하지만 내가 아는 실제 한국의 삶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얼마 전 사 본 중국 신문에서 6월까지만도 232명이 서울 한강에 스스로를 던졌다는 기사를 봤다. 그 곳의 압박, 차별, 스트레스, 그리고 시선의 감옥.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곳을, 이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다. 디아스포라는 슬프지만 아름답다. 이 곳에서 나고자라 평양, 서울, 도쿄를 거쳐 후쿠오카에서 거진 내 나이에 옥사한 윤동주가 쓴 이 몇 구절은 나를 그저 울게 만든다.

고향집 - 만주에서 부른

헌 짚신짝 끄을고
나 여기 왜 왔노
두만강을 건너서
쓸쓸한 이 땅에

남쪽 하늘 저 밑에
따뜻한 내 고향
내 어머니 계신 곳
그리운 고향집

leaf

2010/07/19 03:10 2010/07/19 03:10

그리고 그간,

'배 떨어진' 대련에서의 첫 사흘, 적응기. 생각보다 잠 자던 중국어는 빠르게 깨어났다. 한국어도, 영어도, 모든 언어가 숨을 죽여야만 하니까. 다만 몸은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했다. 물갈이였는지, 대련을 떠나 도착한 하얼빈에서 지독한 설사를 했다. 이틀이나. 이러다 곧 비행기 타고 돌아가야하는 건 아닌가 싶었는데, 긴 시간의 산보와 광합성의 힘이었는지 몸은 그런대로 견뎌냈다.

하얼빈은 더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끄는 무언가가 있다. 러시아 풍의 건물들 사이를 걸으며, 러시아, 일본, 중국, 조선인이 들끓던, 난장판 20세기 초의 만주벌판을 상상하다. 내가 쏠 이등박문은 없었지만 '쏘아댄' 변기는 많았다.

하얼빈은 시간이 갈 수록 내게 애정을 드러내었다.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던 그 곳에서, 사람들은 내게 말을 걸어주었다. 저녁이 되면 유스호스텔에서 나를 끌고 나가는 중국 대학생들에게 한류 스타들에 대해 '아는척'을 해야했다. 억지로 나를 끌고 월드컵 경기를 보자던 랴오닝 출신 따꺼(형)에게 못 이겨 새벽까지 깨어있어야 했다. 코너킥이, 오프사이드가 중국어로 뭐냐고 물어봤다. 그들이 내게 무얼 물어 볼 때면, 나는 조금 천천히 말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 때마다 다들 짜증을 냈다. 그러면서 불이 다 꺼진 로비의 밤은 지나가고, 새벽 세 시면 해가 밝아왔다. 한 때 시나고그였던 건물에서 지낸 일주일은 매일밤이 그렇게 애처롭고 잔잔했다.

그 곳 유스호스텔에서 청소를 하는 아이가, 매일 아침마다 내가 이 다음 어디로 가느냐고, 언제 가느냐고 물어왔다. 나는 그 때마다 나도 잘 모른다고, 어쩌면 베이징으로 갈 거라고 둘러댔다. 그러다 어느 날 아침, 나는 길림으로 갈 거라고, 오늘 짐을 싼다고 말했다. 내 마음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그 어떤 준비도 되어있지 않지만, 몸은 떠날 때를 안다. 늘 그렇게, 어느 날 아침 짐을 싸고는 터미널로 향하는 것이다.

길림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옆에 앉은 아이는 내게 작은 빵을 하나 건넸다. 고마워 하며 먹고있자니 어디서 왔느냐고 한다. 한국에서 왔는데. 자기네 집으로 가지 않겠느냐고 한다. 나는 우물쭈물하다, 길림에는 아는 것도 아는 이도 없어 좋다고 했다. 할머니, 아빠 엄마, 고모, 두 동생이 사는 집은 두 칸 짜리 방이었다. 생선 요리와 맥주를 먹었다. 모두가 둘러 앉아 저녁을 먹자니, 나는 서울에서도 늘 이런 저녁을 원하지 않았나 싶었다.

그리고 오늘, 연변 조선족 자치구의 연길.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내 족속이 사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고향의 내 족속이 사는 꼬라지가 보기 싫어 떠나왔음에도, 나는 왜인지 몰라도 나의 동류를 확인하고 싶었다. 이 곳은 모든 표지판에 한글이 병기되어 있고, 사람들은 조선말을 쓴다. 냉면집과 개고기집이 많다. 밤에 들른 한 나이트클럽에선 한국에서 온 디제이가 원더걸스와 브아걸을 튼다. 2NE1처럼 입은 여자아이가 김밥천국 아줌마 말투로 말을 한다. 애매한 잔정이 나를 간지럽히는 곳이다.

그 무엇도 오바할 것이 없지만, 또 그 어느 것도 쉽게 넘기기엔 너무 감사한 것들이다. 자주 서울에서의 시간을 회상한다. 그 눅진한 독소같던 나날들, 하루 하루가 아무 하는 일 없이도 버텨내야 했고, 매일 매일이 고문 같았다. 미친듯이 걸었지만 밤이면 그 싫던 내 방으로 다시 돌아와야 했다. 하여 그 때에 비하면 나는 지금 너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분명 내 통장은 오래가지 못할 걸 알지만, 어쨌든 완전하다. 이 사소한 완전함을 이제야 느끼고 좋아한다는 게 우습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이 유동성이, 낮은 비열이, 높은 반응성이 자랑스럽다. 나는 그 누가 내게 말을 걸어도, 내가 그 누구에게 말을 걸더라도 일단 미소를 지은 뒤에 대화를 시작할 재간이 있다. 미소는 작금의 내 무기이다.

연길의 밤은 떠나 온 길림보다, 하얼빈보다 자애롭다. 선선한 바람이 마음을 들뜨게 한다. 그러면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나는 멀리있지만 그들의 하루하루는 정말 눅진하고 고될 걸 안다. 그 삶을 모른 체 하고 도망 온 내가 힐난 받아야 마땅한 것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지 않았다면 나는 사랑을 표현할 수 없었으리라. 나는 무섭다. 불안하다. 하지만,

불안이 없는 마음은 사랑도 연애도 아니다. 애정을 더듬어 찾아가는 것은 마음 속의 외로움을 늘려가는 일과도 같다. - 야마다 에이미, <추잉검>

leaf

2010/07/16 03:07 2010/07/16 03:07

다시.



떠나기 전 날, 역시 잠은 잘 오지 않았다. 거의 가수상태로 눈을 감고 있던 와중 날이 밝았고, 아버지와 아침을 먹었다. 방을 마저 정리하고 짐을 짊어지고 집을 나섰다. 인천항에 도착하는 좌석버스를 타는 곳까지 가는 버스를 탔다. 내린 뒤 정류장 바로 앞에 있는 냉면집에서 한국에서의 마지막 끼니를 때웠다.

버스 정류장으로 오니, 타려는 버스 시간을 잘못 알고 있었던 탓에 어쩔 수 없이 제물포역까지만 가는 버스를 탔다. 그리고 역에서 내려서는 택시를 탔다. 택시가 황량한 항구 안을 가로질러 국제여객터미널에 나를 내려주었다.

표를 사자마자 수속장으로 가서 짐과 여권 검사를 하고, 셔틀버스를 타고는 배에 들어섰다. 아주 낡은 배였다. 곳곳이 녹이 슬어있고, 내장재가 뜯어져나가는. 나는 내 이층침대 자리에 짐을 놓고는, 그제야 숨을 돌리고 갑판으로 나갔다. 배처럼 낡은 인천의 모습.

배가 뜨고는 저녁식사를 하고, 한 두 번 갑판에 나가 바람을 쐬고, 새우깡을 던지면 잘도 받아먹는 갈매기들을 구경하다보니 밤은 꽤 일찍 찾아왔다.

대부분이 조선족 사람들이었다. 대여섯살 되는 꼬마들이 한국말과 중국말을 섞어쓰며 이야기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습관은 중국사람들의 그것이다; 마작, 차, 등등.

냉장고 같이 딱 몸 만한 나의 이층 침대 안에 들어가 커튼을 닫으니 금세 졸음이 쏟아져왔다. 꿈도 아닌 이상한 의식 상태를 헤매다 새벽 두시가 넘은 시간에 깼다.

어둔 객실을 더듬어 갑판으로 나왔다. 날은 구름이 가득껴서, 별빛 한 점 보이지 않았다. 때문에 검은 하늘은 검은 물과 완벽하게 섞여 눈을 크게 떠도 모든 것이 그저 까맸다. 그 무섭도록 어둔 공간을 물 소리와 엔진 소리만이 채웠다. 그 때 나는, 내 안이 가득 차 넘치는 기분을 느꼈다.

아침을 맞았다. 도착한 다롄은 많이 더웠다. 비자를 받고, 항구를 나섰다. 셔틀버스를 타고 다롄 기차역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그 뜨거운 열기 아래 이 무거운 짐을 진 채 내버려졌다.

지도도 없었다. 다만 구글맵에서 확인한, 저 앞 공원 근처 싼 숙소가 몇몇 있다는 걸 알고는 그 곳까지 걸어갔다. 땀이 비오듯했고 거리는 생각보다 멀었다.

화려한 쇼핑몰 앞 작은 그늘, 잠시 짐을 내려놓은 뒤 담배 한 대를 피웠다. 오늘 하루 내 몸 누일 곳 하나 모른다는 사실에서 오는 그 절망감은 은은한 공포였지만, 나는 그 모든 질문들에 대해 답을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여 다시 짐을 맸다.

한 허름한 숙소에서 흥정을 하고는 방을 받으려고 여권을 내미니 외국인은 안된단다. 외국인 숙박이 될만한 '기준'에 못 미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곳은 비싼 곳들뿐이었다. 이 곳에는 외국여행객들이 가는 유스호스텔 같은 곳들이 없다.

그 다음 찾아간 곳, 비싼 가격이지만 창문이 없는 방이 좀 더 싸다. 조금 돈을 더 줘도 나는 창문이 있는 곳에 묵기로 했다. 창이 없다는 건 얼마나 영혼을 말려죽이는 것인지 나는 잘 안다.

땀에 절은 옷을 다 벗고 샤워를 한 뒤, 벌거벗은 채로 침대에 누워 깜빡 졸았다. 자다가 잠을 깨니 마치 이 모든 것이 영원히 여기 이대로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곤 이틀이 지났다. 생각보다 중국어는 빨리 살아났다. 대부분의 시간을 지도와 사전을 들여다본다. 칭다오 맥주와 양꼬치를 많이 먹었다. 아무도 나를 외국인으로 생각하지 않고 심지어 길도 물어보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오묘한 시간 동안 내게 머무는 것은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그 어느 누구와도 개인적인 대화를 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당분간은 별로 하고 싶지 않기도 하다.


'저녁마다 이렇게 하고 싶다.
내면적인 것은 아무 것도 쓰지 말고, 그냥 있었던 사건들만 어느 것 하나 잊지 않고 다 적어볼 생각이다. 내가 버려둔 채 하지 못하고 있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괴롭지만 그래도 나는 잠이 들고싶다.'

leaf

2010/07/07 03:13 2010/07/07 03:13

WIZARD AND I

WIZARD AND I from jayy on Vimeo.

IDA와의 작업.

인왕산 자락.

leaf

2010/07/03 11:36 2010/07/03 11:36

동요

심상치 않은 동요를 느낀다.

물론, 그 동요는 아무 것도 아닌 신기루일 수도 있다.

신기루만 좇고 사는 삶이 그 개인에게 있어서 가장 행복한 삶이라면, 그건 정당화가 되는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능한 변화들을 꿈꾼다.

leaf

2010/07/03 02:57 2010/07/03 02:57

데이비드 포스터 월러스가 말하는 삶과 일 
월스트리트저널, 2008년 9월 19일

2005년 Kenyon 대학교에서 있었던 데이비드 포스터 월러스의 졸업 연설. 데이비드 포스터 월러스는 2008년 9월 12일 46세의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두 마리의 젊은 물고기가 헤엄치며 지나가다가, 반대편에서 오는 노인 물고기 한 마리를 만났습니다. 노인 물고기가 인사합니다. "안녕, 얘들아, 오늘 물은 좀 어떠니?" 그랬더니 젊은 물고기들 중 한 마리가 다른 물고기에게 묻습니다. "도대체 '물'이 뭐야?"

이쯤 되면, 여러분은 아마도 저라는 '지혜로운 노인 물고기'가 여러분 '젊은 물고기'들에게 '물'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을 하려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전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저 또한 그 지혜로운 노인 물고기가 아니거든요. 다만 이 물고기 이야기가 전하는 바는, 어디에나 편재할 뿐 아니라 가장 확실하며 중요한 현실은 가장 알아보기 어렵고도 말로 꺼내기 어려운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 말은 분명 참 뻔하고도 따분한 소리로 들릴 겁니다. 하지만 한 사람이 겪는 매일 매일의 삶에서, 이 따분한 이야기야 말로 삶과 죽음을 가르는 중요성을 지니고 있을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이 말은 그저 과장일 뿐이거나 모호한 넌센스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거의 자동적으로 확신하게 되는 것 중 많은 부분은 사실 완전히 틀린 것이거나 단순한 망상일 뿐입니다. 여기 우리가 보통 너무 자연스럽게 믿고 있지만 사실은 완전한 오류인 예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 우주의 완벽한 중심이고, 모든 존재들 중 내가 가장 확실하고 중요하며 또 가장 생생한 존재라는 깊은 신념 하에, 우리는 우리가 당면한 경험과 행동을 하게 된다고 여긴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선천적이고도 기본적인 자기중심성을 밖으로 거의 드러내지 않는데, 왜냐하면 이러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사회적으로 아주 혐오스러운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관념은 우리 깊숙이 모두 비슷비슷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또한 그것은 우리 인간의 어떤 '기본 설정default-setting'이자 태어날 때부터 사고의 회로 기판 속에 각인 되어있는 속성입니다. 이 점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당신이 겪게 되는 모든 경험 중 그 어느 것도 자신이 완전한 중심에 서 있지 않았던 것은 없습니다. 당신이 경험하는 세상은 '당신의' 바로 앞에서, 뒤에서, 또는 '당신의' 왼쪽이나 오른쪽, 아니면 TV나 컴퓨터 모니터 등에서 일어납니다. 타인들의 생각이나 느낌들은 당신과 어떤 방식으로든 교류되어야 하지만, 당신 자신만의 생각이나 느낌들은 즉각적이고도 더 절박할 뿐 아니라 더 실제적이기까지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아실겁니다. 하지만 여기서 또 제가 여러분들에게 타인지향적이 되어야 한다거나, 연민을 가져야 한다는 등의 '덕목'들을 설교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말길 바랍니다. 제가 하는 말은 어떤 특정한 덕목과는 상관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하는 말은, 우리 안 깊숙이 존재하는 이 자기중심성, 즉 자기 자신이라는 렌즈로 모든 것을 해석하게 만드는 이 '기본 설정'을 어떻게든 대체하거나, 이것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고생을 우리 스스로 선택하는 것에 대한 문제입니다.

more..

leaf

2010/06/26 03:36 2010/06/26 03:36

Believe the believable



아무리 종교가 뻥이라한들, 인간은 언제나 무언가를 '믿기' 마련.

때문에 진화란, '믿을만한 것'을 믿는 것.
다른 말로, 뻥을 가려내는 능력을 키우는 것.

leaf

2010/06/21 20:07 2010/06/21 20:07

Jónsi: Go Do

Jónsi - Go Do from Jónsi on Vimeo.

Ida가 알려준 Sigur Ros의 Jón Þór Birgisson.

승리의 장미보다 더 생생한 에너지, 덜한 멜랑콜리.

아름답다. 삶을 살게 한다.

lyrics..


leaf

2010/06/10 03:02 2010/06/10 03:02

Stack overflow


아침에 눈은 뜨지 않아도 손으로 더듬거리며 머리맡의 아이폰을 찾는다. 그리고 자기 전에 팟캐스트를 틀어놓고 잠에 든다.




처음 이 놈을 손에 쥐었을 때만 해도 난 나의 뇌가 확장되는 것이라고, 내가 인지할 수 있는, 그리고 닿을 수 있는 세상의 범위가 그만큼 넓어지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웬걸, 시간이 가면 갈 수록 과도한 정보의 양과 너무 잦은 멀티태스킹 속에서 오히려 나의 존재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마치 공각기동대처럼, 나의 존재가 정보라는 빗방울에 씻겨 네트워크의 하수구 속으로 쏟아져 디지털 쓰레기의 바다에 희석되어 녹아버리는 것만 같다.

많은 정보가 더 많은 능력을 의미한다고 여겼던 내가 우습기만 하다. 정보를 필터링하는 능력은 전혀 연습해보지 않고, 최대한 많은 것을 모아둔 뒤에 분류하고 버리려 한다. 그런데 분류를 위한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 그리고 많은 정보들과 선택 가능항 안에서 삶의 문제들을 '선택'하는 것은 정보의 총량과는 전혀 상관없는 문제이다. 무언가를 가치 평가 하에 선택하는 것은 대부분 인문학적인 문제다. 그건 어떻게 매뉴얼이 있는 것이 아니다. 정보력이 더 나은 삶을 보장할 것이라는 논리는 하드웨어 스펙이 좋은 게 더 나은 스마트폰이라는 논리와 같다.

뭐래니. 아무튼.

설탕이 과도하면 비만을 부르듯이, 정보가 과도하니 집중력 저하와 공감 능력, 사회성의 약화를 초래한다. 정말 세상에 공짜는 없다. 점점 너무 자주 내가 지금 무엇을 하려는지 까먹고, 머리 속에 정보가 머무는 시간은 점점 짧아져만 간다. 팟캐스트와 뉴스 기사는 하루 단위, 트윗은 분 단위. 그게 지나면 쓸모를 다한다. 그런데 그건 내가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쏟아져나온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새로운 정보들을 다 체크해야만 한다는 전혀 근거 없는 의무감을 갖고 뇌에 정보를 구겨 넣는다.


합병증을 부르는 비만을 피하기 위해 다이어트를 해야하듯이, 멘탈 다이어트도 필요한 것 같다. Uni-tasking을 의도적으로 한다고도 하는데, 내 생각엔 '명상'이 훨씬 나을 것 같다. 또는, 짧더라도 다른 감각이 제거된 상황에서 앞의 한 가지 물체에 집중하는 것. 또는, 옴- 을 길게 소리내는 것. 

leaf

2010/06/10 02:57 2010/06/10 02:57

척 하긴


피해라는 이름의 해피

만난 첫날부터 결혼하자던 한 남자에게
꼭 한 달 만에 차였다
헤어지자며 그 남자는 말했다

너 그때 버스 터미널 지나오며 뭐라고 했지?
버스들이 밤이 되니 다 잠자러 오네 그랬어요
너 일부러 순진한 척한 거지, 시 쓴답시고?
그런 게 시였어요? 몰랐는데요

너 그때 「두사부일체」 보면서 한 번도 안 웃었지?
웃겨야 웃는데 한 번도 안 웃겨서 그랬어요
너 일부러 잘난 척한 거지, 시 쓴답시고?
그런 게 시였어요? 몰랐는데요

너 그때 도미회 장식했던 장미꽃 다 씹어 먹었지?
싱싱하니 내버리기 아까워서 그랬어요
너 일부러 이상한 척한 거지, 시 쓴답시고?
그런 게 시였어요? 몰랐는데요

진정한 시의 달인 여기 계신 줄
예전엔 미쳐 몰랐으므로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사연 끝에 정중히
號 하나 달아드리니 son of a bitch

사전은 좀 찾아보셨나요? 누가 볼까
가래침으로 단단히 풀칠한 편지
남자는 뜯고 개자식은 물로 헹굴 때
비로소 나는 악마와 천사 놀이를 한다
이 풍경의 한순간을 시 쓴답시고


김민정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2009)

leaf

2010/06/02 20:49 2010/06/02 20:49

많은 글을 쓴다.

나는 요즘 많은 글을 이 블로그에 쓴다, 그리고,

10개를 쓰면 10개는 비공개로 남겨둔다.

leaf

2010/06/01 10:37 2010/06/01 10:37

Follow the leader

 

하드코어가 풍미하던 90년대 말, 기타를 잡았던 열입곱 김진우가 많이 들었던 앨범 중에 Korn의 Follow the leader라는 앨범이 있었다.

그래서 트위터를 "팔로우"한다는 말만 들으면 어쩐지 그 앨범 제목이 생각나고 바로 저 앨범 커버와 그들의 음악처럼 뭔가 암울한 느낌이 든다. 정작 트위터는 뭔가 연대와 소통이 있는 새나라의 공간 같지만.

어쨌든, Follow the another leader.

leaf

2010/05/31 01:45 2010/05/31 01:45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제8극장,
일단은준석이들
홍보 팜플렛
May, 2010

leaf

2010/05/31 00:15 2010/05/31 00:15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일단은 준석이들 EP 앨범 자켓 작업.


꼴랑 사진 네 컷 던져주면서 CD자켓 작업을 1주일만에 해 달라는 얘네들이 어이 없었기도 했지만, 내심 내게 하얀 캔바스를 쥐어 준 것 같아 고맙기도 했다. 무언가를 만든다는 기분이 오랜만에 잔잔했던 즐거웠던 작업. 마무리 작업을 하던 새벽, 도혁이 (젬베치는 애, 남자임) 는 옆에서 쉬지 않고 재잘댔었다.

leaf

2010/05/30 01:03 2010/05/30 01:03

우기


우기는 시작되었고, 유세 방송엔 스산한 냉기가 덧낀다.

세상은 혼란의 정점을 향해 달려가지만 나의 일상엔 고요의 관능이 스며든다.

leaf

2010/05/25 11:01 2010/05/25 11:01

놓기

"언어는 기억이 과거를 탐험하는 도구가 아니라, 과거의 극장임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대지가 죽은 도시들이 매장되는 매개물이듯, 언어는 과거 경험의 매개물이다. 매장된 자신의 과거로 접근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광부처럼 행동해야 한다. 이것이 참된 회상에 격조와 인내를 부여한다. 그는 같은 문제로 반복해서 돌아오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토양을 흩날려버리듯이 걱정을 떨쳐버리고, 대지를 갈아엎듯이 과거를 갈아엎어라."
- 일방통행로, 발터 벤야민

leaf

2010/05/20 21:35 2010/05/20 21:35

Things are

Things are worn out and starting to fall apart from me. But got no strength to grab it. Even in my arm's length. Can't go mad, can't beg either. Wonder how I've got this far. Wonder how come I've made myself worthless this much. There were apparent reasons why I was suffering from dyspnoea these days. Even can't shed any tears at all and I'm just, just, depleted. Yeah, depleted. That might be the proper word. I know clearly that I've caused all these. So I've got no words to rebut if someone blamed me or cursed me. I just hope that that moment come a bit later. A bit later, so that I can make some time for escape. Escape. Even though I've had plenty of time for that till now. Funny. I even don't know whether I have any right to use the word hope. I wonder is there any hope for hopeless.

I wish I can talk to myself more often. I wish I can focus on myself a lot more. But I always evade. Don't wanna face it at all. I'm carrying a heart that is made of mineral. I know I should, I am supposed to go mad or be sad or at least scream. But I ain't got nothing to make it happen. Or make it back. Even dunno whether I really do wanna make it back or not. Things are just changing and going far away. I'm just looking at it. Looking at it with hollow pupils.

leaf

2010/05/18 03:11 2010/05/18 03:11

관찰과 참여

"불편하고 바람에 시달리는 적대적으로 노출된 관찰자의 영역에 머물 것인가, 혹은 진행 중인 소동 속에서 어떤 역할을 취할 것인가." <모스크바> 발터 벤야민


아니면 둘 다 되지 못하고 시력 잃은 잉여가 될 것인가.

leaf

2010/05/10 15:35 2010/05/10 15:35

Micro coma

선선한 일요일 밤, 나는 지금 청계천 옆 한 카페에 앉아있다. 책을 읽다가, 불현듯 이미지 하나가 떠오른다. 마치 수백분의 일 초 동안 정신을 잃은 것처럼, 어떤 micro coma처럼;

El Calafate에서 탄 비행기가 Buenos Aires에 도착한 정오 무렵, 가방을 찾은 뒤 공항을 나왔을 때, 부서지는 햇살과 길게 늘어선 가로수들.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그 공항 앞, 그 당시의 광경이. 아직은 해가 따갑던 남반구의 초겨울; 6월의 햇살, 그리고 나무 그늘이 만든 기다랗고 청아한 길. 아슥아슥하던.

그 때의 광경이 아무런 이유 없이 눈 앞을 수백만분의 일 초간 가로막는다.

leaf

2010/05/09 22:53 2010/05/09 22:53

The oldest meme

아주 가파른 언덕을 내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언덕 초입에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 한 분이 정말 한 걸음 한걸음 고역처럼 언덕을 올라오고 계신다. 건강한 다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미안해지게 만드는 힘겨운 걸음, 아니 걸음이라기보다는 그저 '다리 옮김'이다. 할머니의 옆을 지나칠 때, 할머니가 갑자기 내 쪽을 바라보셨다. 난 도움이 된다면 부축 정도는 해드리려고 했는데, 할머니는 얼굴에 비웃음 비슷한 미소를 머금고, 오히려 내가 더 측은하다는 표정으로,

 "예수 믿어요, 예수."

leaf

2010/05/08 21:13 2010/05/08 21:13

7년째 전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삶에 대한 방기일까, 를 걱정하디가 그 모든 방기에 대한 반대들의 궁극적 목적이 행복해지기 위한 거라면, 그리고 확실한 방법이 눈 앞에 있다면.

leaf

2010/05/04 08:25 2010/05/04 08:25

슬픈밤

망원동에 국물이 진짜 맛있는 우동 집이 있다고, 그 곳에 가자고, 새벽 세 시가 넘은 시간에 녀석을 끌고 홍대에서 망원동까지 걸어갈 때, 나는 취기였는지 왜 그리 기분이 신났는지 좋았는지 폴짝폴짝 뛰며 나무에 매달리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촐랑대는 내 뒤를 금방 사랑이 무너졌던 그 녀석은, 무너진 사랑에 미친듯이 울어대던 그 녀석은 그저 터덜터덜 따라왔었다. 늦게까지 천막을 세우고 장사를 하던 그 집에서 우리는 우동 하나와 소주 한 병을 시켰다. 그리곤 술을 따를 때, 녀석도 나도 더 이상 들이붓지 못할 정도로 취했단 걸 빤히 알면서도 잔은 채우고 볼 때, 이미 다 너덜너덜해진 사랑, 완전히 힘이 빠진 어깨, 진부해진 뻔한 위로, 그 슬픔의 중심을 애둘러 돌아가기 위해 쏟아내던 너스레들, 그리고 너스레를 떨고나면 언제나 뒤이어 파고드는 스산한 침묵, 침묵이 다시금 불러오는 무너진 사랑의 폐허. 그 차가운 밤, 밤,




그 날 밤이 떠오를 때면 나는 늘 울음을 터뜨린다.

leaf

2010/04/30 00:46 2010/04/30 00:46

또꿈

꿈에서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태국 방콕이었다. 방콕인지는 확실하지 않은 게, 도착한 여행자 게토가 카오산과는 많이 달랐다. 마치 버스 터미널 같은 곳에 식당과 바가 잔뜩 있었던 그 곳은 태국인지조차 확실하지 않았지만 그 사악한 느낌과 분위기와 가장 닮은 곳은 역시 (현실의 경험에서는) 태국 카오산 거리였다. 아무튼 나는 꿈 속 그 곳의 한 식당에서 게이 한 명과 태국 커플을 만났고, 어쩌다 그들과 함께 어울리게 되었다. 그들이 내게 버터(마치 타르트처럼 생겼던 버터)를 얻어오라고, 남자가 돌아다니며 얻는 게 더 쉽게 얻을 수 있다고, 그래서 나는 어떤 네 명의 남자들이 있는 곳에 가서 버터를 얻으려 했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들은 한국사람들이었다. 나는 버터를 다시 가져왔지만 그 때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는 때였다.

환전소에서 한국돈을 바꾸려고 보니 지갑에 만원짜리 열 장과 천원 짜리 몇 장이 있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물어 근처에 괜찮은 숙소를 찾았고, 그 곳은 왼쪽 골목의(처음 꿈에서 본 동네의 위치를 짐작하고 있다는 것도 웃기다) LG 입간판이 있는 건물 뒤 쪽의 숙소라고 했다. 그 곳의 카운터에 가 나는 방을 알아보고, 같이 다니던 게이 친구에게 방을 같이 써도 괜찮겠냐며, 물어보았더니 그 친구는 잠시 멈칫하는 것 같았지만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방으로 향하는 길에 본 나의 쪼리는 버켄스탁 여성용처럼 생긴 쪼리를 신고 있었는데, 생김새와 색깔이 완전히 다른 짝짝이를 신고 있었다. 커플 중 남자애가 짝짝이 쪼리를 보고 서로 생긴 게 당췌 비슷하지조차 않는다며 놀려댔는데 나는 허허 웃으며 '그렇게 오랫 동안 준비해서 온 여행이 이렇다',  내일부터 옷가지와 쪼리를 새로 사야하겠다고 생각했다. 그 때 창 밖에서 601번 버스가 지나간다고 누가 그랬는데, 난 놀라서 "저게 그 601번 버스는 아니겠지~"하며, 잘 알지도 못하는 유행어를 흉내내면서 밖으로 달려나갔더니, 그건 인천인지 어딘지 다른 지방의 버스였다. 아무튼 버스 몇 번 갈아타면 태국까지 오긴 오는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

우리집 초인종이 울렸고, 나는 잠을 깼다. 가스 미터기 숫자를 확인하는 분이었다. 초인종이 울리는 순간 잠을 깰 때 나는 마치 매트릭스에서 플러그를 빼면 피식하고 쓰러지는 것처럼 꿈 속 나의 의식이 갑자기 증발해버리고 이 꿈 같은 현실이 나를 압도한다는 것이 너무나 어색했다. 가스 미터기 숫자를 불러주고 다시 침대를 파고들었을 때, 나는 같이 방을 쓰기로 했던 그 게이 친구의 어색해하던 모습을 기억하며 '불편하면 방을 따로 써도 난 괜찮다, 고 우선 물어봤어야 했어...'라며 뒤늦게 미안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꿈 속 일에 대해 아쉬워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 없던 꿈 속 세계들이 어쨌든 체계를 형성하고 나름대로 굴러갔던 것처럼, 지금 여기서 내가 짊어지고 있는 현실도 절대 말은 안 되지만, 전혀 현실적이지 않지만, 어쨌든 굴러가긴 한다. 아무 체계도 없이. 하여 어쩌면 이 현실도 매트릭스의 플러그처럼 그렇게 쉽게 슉 하고 사라질 수 있는 건 아닐까, 하며, 참으로 몽롱해졌다. 참으로 허무해졌다. 그리고 또 반대로, 하여, 모든 것의 유한성을 깨닫게 되었을 때 삶의 에너지를 되찾게 되기도 한다.

leaf

2010/04/28 11:42 2010/04/28 11:42

모로 가도

문제는 목적지에 얼마나 빨리 가느냐가 아니라, 그 목적지가 어디냐는 것이다. - 메이벨 뉴 컴버 -

어찌됐든 움직이긴 해야한다는 것이다.

leaf

2010/04/26 20:26 2010/04/26 20:26

마쉬멜로우 문제



끊임 없이 시도하라, 피드백에서 배워라, 배운 것을 조직화하라.

leaf

2010/04/26 00:38 2010/04/26 00:38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해부학 혹은 그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자본주의의 경제적 질서를 손대지 않은 채 우리가 얻으려 했던 자유와 행복에의 꿈이 어떻게 새로운 자본주의적 주체의 모델 속에 통합되어 버렸는지를 헤아리지 않는다면, 신자유주의적 주체화의 정치에 대한 비판은 아무런 쓸모가 없을 것이다.


오랜만에 서동진님의 블로그를 읽었다. 늘 그렇듯이 본능적으로 고민하던 많은 것들이 명확해졌다.

신자유주의가 손 하나 대지 않고도 노동자들이 탁월한 생산 도구로서 스스로를 계발시키도록 할 수 있었던 건 경제의 문제를 정치의 문제로 대체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말하자면 민주화 시절 자본주의에 대한 질문 없이 정치적 해방만을 바랐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기계발, 민주화, 웰빙 그 어느 시대보다 인간 중심적인 것 같은 삶의 표면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계속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유는, 더욱 더 극심한 소외가 일어나는 이유는, 자본주의의 교묘한 삶에 대한 기획을 성찰없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하여, 서동진님이 자기계발의 주체와 산업적 연애를 추구하는 존재를 연결하고, 그들을 동물적인 몸의 느낌을 찾으려는 피아니스트와 파이트 클럽의 존재들과 대비시킨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

그리고 아마 그가 이야기하지 않은 것 중 의문스럽고도 막막한 것은, 왜 우리는 '소외'를 견디지 못하느냐 하는 것이다. 산소가 없으면 살 수 없는 것처럼, 생물학적 또는 진화심리학적으로 당연한 인간 정신의 고정된 작동 원리인건지, 아니면 낭만적 연애와도 같은 역사적 발명품일까하는 의문. 물론, 진화적인 생물학적 feature가 행동에의 당위가 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또 다른 고민이 필요하겠지만.

leaf

2010/04/23 22:34 2010/04/23 22:34

Flâneur


나는 걷는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서는 가장 낯선 이름의 정류장에서 내린다. 그리고는 눈이 발을 이끄는 대로, 나는 걷는다.

큰 대로나 익숙한 거리들은 의식적으로 피한다. 좀 더 구불거리고 좀 더 구석진 골목이기만 하면, 그 안에서 나는 작은 벚꽃 나무 한 그루에, 도둑 고양이의 눈빛에, 치즈케이크 모양의 낡은 건물 하나에 취해 하염없이 걷는다, 걷는다.

_후미진 망원동의 뒤쪽에서 서교동을 지나 동교동 그리고 창천동까지 걷다. 익숙한 곳의 그림자 같았던, 평소에는 자주 가닿지 않았던 골목들, 7년을 보낸 신촌의 뒤켠에 몰몬교의 성전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_처음 접하는 서울의 번화가, 성신여대 앞에서 걷기 시작해 대학로의 동그란 로터리를 지나, 운현궁의 담벼락을 따라 광장시장에 다다른다. 황량한 사거리 힌 켠에 자리잡은 낡디낡은 일본식 건물을 넋을 놓고 바라보다.

_마포 뒤켠의 우동집에서 모듬 우동 하나를 먹고 용강동을 지나 이대 쪽으로 걷는다. 걷다, 나트륨등 아래에 가지런히 조용한 벚꽃길, 아무도 없던 기다란 꽃길을 발견하고는 연옥으로 향하는 혼이 된 것처럼 의지없이 방향을 틀어 그 길 위를 부유한다.

_노량진 고시촌의 뒤골목을 헤매다 삼천원짜리 밥을 먹고 천원짜리 커피를 마시고 걸어걸어 한강대교를 건넌다. 지는 해, 아직은 찬 바람, 북으로 북으로, 용산역 사창가를 지나 삼각지로 향하는 길의 뒤골목에는 분명 예전에 미군의 건물이었을 2층 건물들에 해장국집과 갈비집들이 들어차있다. 삼각지를 지나 남영역 지하터널을 넘어 숙대입구에 와서야 커피를 찾는다. 그러다 버스를 타고 효창공원 쪽으로 넘어가다 갑자기 충동적으로 내린 곳은 한겨레 신문사, 그 언덕길을 내려와 탄 604번은 또다시 종로로 의미 없이 이유없이 나를 휩쓴다.


욕망없는 다리를 탐욕스런 눈이 이끈다.
내가 그 곳에 있었고 지나쳤다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은 나의 몸을 투명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무도 평범한 것들에 대한 관음증만 남았다. 그 욕망은 계속 더 큰 판돈을 걸다가 파멸에 이르게 하는 도박처럼, 나를 더욱 더 멀리 내몬다. 그 끝이 없는 중독적 산보 속으로 나를 내몬다.  

leaf

2010/04/18 23:26 2010/04/18 23:26

« Previous : 1 : 2 : 3 : 4 : 5 : ... 33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