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화론의 유혹
David Sloan Wilson
_진화론을 안다는 것은, 세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설명 체계를 습득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설명 체계가 도대체 무슨 필요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물이 증발해 구름이 생기고 비가 내리는 것을 아는 것과 같다. 우리가 어디서 왔느냐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라고 말하는 까닭은 에덴 동산도 많은 사람들이 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답변일 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직면해야 하는 문제들에 대한 용이하며 중요한 설명틀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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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대표적인 예로, 비만이란 인간이 기근 때 필요에 의해 유전적으로 형성해 온 기질이었으나, 현대 사회와 같은 바뀐 환경 안에서는 어떤 오류인 셈이다. 저자는 이렇게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 유전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상황을 '유령과 함께 춤을 춘다'라고 표현한다. 달빛을 좇아 알을 낳으러 가는 바다거북들이 인간의 도시가 뿜는 빛을 보고 집단 자살을 하게 되는 것이 유령과 함께 춤을 추는 것이다. (물론, 인간은 AI와 SI처럼 유령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_진화의 종착점은 인간이고, 인간의 의식과 문화, 종교, 예술이란 인간을 동물과 구별짓는 너무나 특별한 무엇이며, 유전자는 결정적이고 그것의 간단한 변형만으로 수퍼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대가 생각하는 진화론이라면, 그건 모두 왜곡되었다. 문화, 예술 뿐만 아니라 진화론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그것의 대척점에 있다고 여겨지는 종교 마저 이 설명틀로는 진화의 도구라는 것이다. 특히 집단 선택group selection을 내세우는 그의 이론들은 굉장히 사회학적이다; 작은 곤충이 생존 도구로 좀 더 튼튼한 갑옷과 맹독을 개발하듯, 인간은 종교와 문화를 개발해 왔고, 그것은 인간 군집의 적응과 영속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_때문에 리처드 도킨스Dawkins의 Meme의 개념과 유사하다. 그는 그렇게 멋드러진 새 용어는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분명 종교에 대해 설명을 할 때 '정신적 바이러스'라고 매몰차게 공격하는 도킨스와 달리, 상보적인 입장으로 종교를 설명한다. 종교 또한 어떤 인간 종족 영속에 도움이 되는 하나의 발명품으로, 선함(이타심)을 강조하고 집단의 발전을 도모했던 종교들만이 살아남았으며, 때문에 종교 또한 인간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는 '일부' 종교의 믿음 체계와 행위들이 '유령과 춤을' 추게 만든다고 한다. 그리고 미래의 사회에서 그 Meme을 영속시킬 수 있는 종교로는 불교를 넌지시 제시한다.)
_저자가 칙센미하이(<플로우>의 저자)의 연구들을 가지고 했던 사회성과 이타심에 관한 연구는 그야말로 사회심리학 또는 사회학 연구이다. 그리고 그는 여기에 진화론적 설명틀을 덧씌운다. 인간은 진화의 어느 순간에선가 (거의 벌이나 개미와 비슷할 정도로) 집단 사회를 형성하게 되었고, 각 행위자 사이의 구조적systematic인 소통이나 협력은 생존에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집단 내의 작동 양식들을 알아내는 것은 진화론으로썬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기도 하다. 다만 저자의 말처럼, 지금까지는 진화란 '생물학'의 범주에만 갖혀 유전자 이외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되어버렸고, 때문에 이 이론의 적용에 대해 거의 모든 분야에서는 반감부터 산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분야에 적용할 수 있음에도 말이다.
_분명 진화론은 인간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하지만 늘 인간 종 외 다른 동물들에게 적용하던 그 이론을, <털 없는 원숭이>처럼, 인간에게 적용하는 것을 보게 되면 그게 참 기분이 이상하다는 것이다. 어딘가 '유체 이탈'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인데, 인간을, 즉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객관화가 되기 때문이다. 나 또한 아프리카 어딘가에 조상을 두고 있는 생물 종 중 하나이며, 유튜브나 집 앞 치킨집까지 인간 진화의 결과 또는 방법 중 하나라고 보게 되면, 어딘가 모르게 나 그리고 인간은 꽤 시시한 무엇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어쩌면, 그런 모든 느낌이 '배타적이어야 생존할 수 있는' 또 다른 어떤 진화론적 적응일지 모르겠다. 우리는 사냥감에게 감정적 유대를 가지고서는 생존할 수 없었던 것이다.)
_하지만 또 인간이 그런 객관적 자각을 가질 때에야만 오만하지 않을 것이고, 그래야만 지구 온난화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므로, 결론은, 우리가 진화론을 올바로 이해했을 때 북극곰이 익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_(다만, '진화'라는 말이 어딘가 단선적인 느낌이 있다. 마치 그 종착점이 있는 것처럼. 어쩌면 위에 쓰인 모든 '진화'라는 단어는 '적응adaptation'으로 바뀌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 어떤 형질도 유전적으로 또는 환경적으로 완벽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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