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은 더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끄는 무언가가 있다. 러시아 풍의 건물들 사이를 걸으며, 러시아, 일본, 중국, 조선인이 들끓던, 난장판 20세기 초의 만주벌판을 상상하다. 내가 쏠 이등박문은 없었지만 '쏘아댄' 변기는 많았다.
하얼빈은 시간이 갈 수록 내게 애정을 드러내었다.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던 그 곳에서, 사람들은 내게 말을 걸어주었다. 저녁이 되면 유스호스텔에서 나를 끌고 나가는 중국 대학생들에게 한류 스타들에 대해 '아는척'을 해야했다. 억지로 나를 끌고 월드컵 경기를 보자던 랴오닝 출신 따꺼(형)에게 못 이겨 새벽까지 깨어있어야 했다. 코너킥이, 오프사이드가 중국어로 뭐냐고 물어봤다. 그들이 내게 무얼 물어 볼 때면, 나는 조금 천천히 말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 때마다 다들 짜증을 냈다. 그러면서 불이 다 꺼진 로비의 밤은 지나가고, 새벽 세 시면 해가 밝아왔다. 한 때 시나고그였던 건물에서 지낸 일주일은 매일밤이 그렇게 애처롭고 잔잔했다.
그 곳 유스호스텔에서 청소를 하는 아이가, 매일 아침마다 내가 이 다음 어디로 가느냐고, 언제 가느냐고 물어왔다. 나는 그 때마다 나도 잘 모른다고, 어쩌면 베이징으로 갈 거라고 둘러댔다. 그러다 어느 날 아침, 나는 길림으로 갈 거라고, 오늘 짐을 싼다고 말했다. 내 마음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그 어떤 준비도 되어있지 않지만, 몸은 떠날 때를 안다. 늘 그렇게, 어느 날 아침 짐을 싸고는 터미널로 향하는 것이다.
길림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옆에 앉은 아이는 내게 작은 빵을 하나 건넸다. 고마워 하며 먹고있자니 어디서 왔느냐고 한다. 한국에서 왔는데. 자기네 집으로 가지 않겠느냐고 한다. 나는 우물쭈물하다, 길림에는 아는 것도 아는 이도 없어 좋다고 했다. 할머니, 아빠 엄마, 고모, 두 동생이 사는 집은 두 칸 짜리 방이었다. 생선 요리와 맥주를 먹었다. 모두가 둘러 앉아 저녁을 먹자니, 나는 서울에서도 늘 이런 저녁을 원하지 않았나 싶었다.
그리고 오늘, 연변 조선족 자치구의 연길.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내 족속이 사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고향의 내 족속이 사는 꼬라지가 보기 싫어 떠나왔음에도, 나는 왜인지 몰라도 나의 동류를 확인하고 싶었다. 이 곳은 모든 표지판에 한글이 병기되어 있고, 사람들은 조선말을 쓴다. 냉면집과 개고기집이 많다. 밤에 들른 한 나이트클럽에선 한국에서 온 디제이가 원더걸스와 브아걸을 튼다. 2NE1처럼 입은 여자아이가 김밥천국 아줌마 말투로 말을 한다. 애매한 잔정이 나를 간지럽히는 곳이다.
그 무엇도 오바할 것이 없지만, 또 그 어느 것도 쉽게 넘기기엔 너무 감사한 것들이다. 자주 서울에서의 시간을 회상한다. 그 눅진한 독소같던 나날들, 하루 하루가 아무 하는 일 없이도 버텨내야 했고, 매일 매일이 고문 같았다. 미친듯이 걸었지만 밤이면 그 싫던 내 방으로 다시 돌아와야 했다. 하여 그 때에 비하면 나는 지금 너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분명 내 통장은 오래가지 못할 걸 알지만, 어쨌든 완전하다. 이 사소한 완전함을 이제야 느끼고 좋아한다는 게 우습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이 유동성이, 낮은 비열이, 높은 반응성이 자랑스럽다. 나는 그 누가 내게 말을 걸어도, 내가 그 누구에게 말을 걸더라도 일단 미소를 지은 뒤에 대화를 시작할 재간이 있다. 미소는 작금의 내 무기이다.
연길의 밤은 떠나 온 길림보다, 하얼빈보다 자애롭다. 선선한 바람이 마음을 들뜨게 한다. 그러면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나는 멀리있지만 그들의 하루하루는 정말 눅진하고 고될 걸 안다. 그 삶을 모른 체 하고 도망 온 내가 힐난 받아야 마땅한 것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지 않았다면 나는 사랑을 표현할 수 없었으리라. 나는 무섭다. 불안하다. 하지만,
불안이 없는 마음은 사랑도 연애도 아니다. 애정을 더듬어 찾아가는 것은 마음 속의 외로움을 늘려가는 일과도 같다. - 야마다 에이미, <추잉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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