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떠나기 전 날, 역시 잠은 잘 오지 않았다. 거의 가수상태로 눈을 감고 있던 와중 날이 밝았고, 아버지와 아침을 먹었다. 방을 마저 정리하고 짐을 짊어지고 집을 나섰다. 인천항에 도착하는 좌석버스를 타는 곳까지 가는 버스를 탔다. 내린 뒤 정류장 바로 앞에 있는 냉면집에서 한국에서의 마지막 끼니를 때웠다.

버스 정류장으로 오니, 타려는 버스 시간을 잘못 알고 있었던 탓에 어쩔 수 없이 제물포역까지만 가는 버스를 탔다. 그리고 역에서 내려서는 택시를 탔다. 택시가 황량한 항구 안을 가로질러 국제여객터미널에 나를 내려주었다.

표를 사자마자 수속장으로 가서 짐과 여권 검사를 하고, 셔틀버스를 타고는 배에 들어섰다. 아주 낡은 배였다. 곳곳이 녹이 슬어있고, 내장재가 뜯어져나가는. 나는 내 이층침대 자리에 짐을 놓고는, 그제야 숨을 돌리고 갑판으로 나갔다. 배처럼 낡은 인천의 모습.

배가 뜨고는 저녁식사를 하고, 한 두 번 갑판에 나가 바람을 쐬고, 새우깡을 던지면 잘도 받아먹는 갈매기들을 구경하다보니 밤은 꽤 일찍 찾아왔다.

대부분이 조선족 사람들이었다. 대여섯살 되는 꼬마들이 한국말과 중국말을 섞어쓰며 이야기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습관은 중국사람들의 그것이다; 마작, 차, 등등.

냉장고 같이 딱 몸 만한 나의 이층 침대 안에 들어가 커튼을 닫으니 금세 졸음이 쏟아져왔다. 꿈도 아닌 이상한 의식 상태를 헤매다 새벽 두시가 넘은 시간에 깼다.

어둔 객실을 더듬어 갑판으로 나왔다. 날은 구름이 가득껴서, 별빛 한 점 보이지 않았다. 때문에 검은 하늘은 검은 물과 완벽하게 섞여 눈을 크게 떠도 모든 것이 그저 까맸다. 그 무섭도록 어둔 공간을 물 소리와 엔진 소리만이 채웠다. 그 때 나는, 내 안이 가득 차 넘치는 기분을 느꼈다.

아침을 맞았다. 도착한 다롄은 많이 더웠다. 비자를 받고, 항구를 나섰다. 셔틀버스를 타고 다롄 기차역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그 뜨거운 열기 아래 이 무거운 짐을 진 채 내버려졌다.

지도도 없었다. 다만 구글맵에서 확인한, 저 앞 공원 근처 싼 숙소가 몇몇 있다는 걸 알고는 그 곳까지 걸어갔다. 땀이 비오듯했고 거리는 생각보다 멀었다.

화려한 쇼핑몰 앞 작은 그늘, 잠시 짐을 내려놓은 뒤 담배 한 대를 피웠다. 오늘 하루 내 몸 누일 곳 하나 모른다는 사실에서 오는 그 절망감은 은은한 공포였지만, 나는 그 모든 질문들에 대해 답을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여 다시 짐을 맸다.

한 허름한 숙소에서 흥정을 하고는 방을 받으려고 여권을 내미니 외국인은 안된단다. 외국인 숙박이 될만한 '기준'에 못 미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곳은 비싼 곳들뿐이었다. 이 곳에는 외국여행객들이 가는 유스호스텔 같은 곳들이 없다.

그 다음 찾아간 곳, 비싼 가격이지만 창문이 없는 방이 좀 더 싸다. 조금 돈을 더 줘도 나는 창문이 있는 곳에 묵기로 했다. 창이 없다는 건 얼마나 영혼을 말려죽이는 것인지 나는 잘 안다.

땀에 절은 옷을 다 벗고 샤워를 한 뒤, 벌거벗은 채로 침대에 누워 깜빡 졸았다. 자다가 잠을 깨니 마치 이 모든 것이 영원히 여기 이대로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곤 이틀이 지났다. 생각보다 중국어는 빨리 살아났다. 대부분의 시간을 지도와 사전을 들여다본다. 칭다오 맥주와 양꼬치를 많이 먹었다. 아무도 나를 외국인으로 생각하지 않고 심지어 길도 물어보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오묘한 시간 동안 내게 머무는 것은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그 어느 누구와도 개인적인 대화를 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당분간은 별로 하고 싶지 않기도 하다.


'저녁마다 이렇게 하고 싶다.
내면적인 것은 아무 것도 쓰지 말고, 그냥 있었던 사건들만 어느 것 하나 잊지 않고 다 적어볼 생각이다. 내가 버려둔 채 하지 못하고 있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괴롭지만 그래도 나는 잠이 들고싶다.'

leaf

2010/07/07 03:13 2010/07/07 03:13

Trackback URL : http://laplesia.net/trackback/1074

« Previous : 1 :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 978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