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길의 마지막 밤

배가 도착하는 대련 이후에 대해서는 아무런 계획도 생각도 없던 여정이 어떻게 대련, 하얼빈, 길림, 그리고 연변조선족자치구의 연길까지 오게 되었다. 마치 계단을 내려오듯 가장 번화한 도시 대련에서, 아시아의 파리라고 불리던 과거의 영광을 잃고 지금은 많이 쇠락한 하얼빈, 그리고 그보다 더 외진 길림시, 그리고 두만강 너머의 간도 땅 조그만 도시 이 곳 연길까지. 아, 윤동주의 고향, 용정이라는 작은 동네를 갔던 것까지 포함. 저 앞에 '서울'을 붙이면, 이건 마치 어떤 알 수 없는 '괴물leviathan' 또는 '기계machine'에서 점점 도망쳐 온 기분이다.

그리고 지금 묵는 연길의 시상여관 근처에는 소학교가 하나 있고, 실개천이 가까이 있으며, 그 외에는 딱히 뭐 하나 없다. 주말 밤에도 이 도시는 적막하기 그지없다.

조선족자치구에 가 보고 싶다는 마음은 하얼빈에서부터 들었는데, 왜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떤 나의 동류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하얼빈에서 떠듬떠듬 중국어를 지껄이는 나를 신기해하며 자꾸만 말을 걸던 사람들 사이에서 대화의 감이라도 잡으려면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했는데 그러기를 몇 밤, 그저 타지의 이질감에 너무 빨리 지쳐버렸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연길, 애잔하다. 19세기 중반 수년 간에 걸친 지독한 기근에 두만강을 넘어 온 사람들. 윤동주가 다니던 중학교를 찾아 갔을 때 길을 몰라 지긋하신 분들에게 길을 물었다. 한 할머니는 내게 "조선 사람이야?"라고 묻는다.

말하자면 '조선'이 '우리네'를 묵는 기준이다. 그 말은 한국도 북한, 간도, 어쩌면 까레이스키까지, '조선'이 부서진 조각 중 하나라는 것이다. 마치 북한은 사회주의의 변태적 소산이고 조선족은 이미 중국화 되어 '오염된' 회색의 문화이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가 가능한 한국만이 인간의 존엄을 보장하는 한국 사람의 진정한 국가라는 생각; 뭐 어찌 생각하든 다 좋은데, '한국은 한국'일 뿐이다. 그렇게 보자면 한국 또한 역사상 가장 변태적 이념인 자본주의에 꽤나 오염되고 조선 문화의 (뒤틀린) 변형 중 하나일 뿐이다.

이 곳은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의 인구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이제 스무살이나 되어 보이는 아이들은 무료해 보였다. 그들은 설픈 화장과 어색한 옷차림을 하고 한국에서 온 DJ가 원더걸스를 트는 나이트엘 간다. DJ는 한참 노래를 틀다가 '놀아보자며' DJ박스에서 나와 끝장나게 춤을 추기 시작한다. 저 DJ가 어떻게 이 곳에 오게 되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아마 지방 나이트에서 파장 때에만 노래를 틀다 메인으로 써주는데다 보수도 좀 더 낫다는 제안에 오게 되었을지도. 저 DJ는 한국에서 '파장 시간대'에 노래를 틀다 마감한 뒤, 해가 다 뜬 아침에 들른 김밥천국에서 먹은 떡라면은 어쩌면 이 곳을 떠난 아줌마가 끓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아줌마의 딸은 이 나이트에서 흔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저 아이 또한, 이 곳을 떠나지 못해 흔든다.

아이들은 킬힐을 신고 한국 드라마를 본다. 그럼에도 그들은 어서 중국의 다른 큰 도시로 가고 싶어한다. 모든 간판과 표지판이 중국어와 조선말로 병기되어 있는 것처럼, 이 곳은 화려한 한국의 문화와 자신들이 속한 중국의 현실 안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들이 동경해 마지않는 나의 고향을 생각한다. 이들의 동경, 하지만 내가 아는 실제 한국의 삶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얼마 전 사 본 중국 신문에서 6월까지만도 232명이 서울 한강에 스스로를 던졌다는 기사를 봤다. 그 곳의 압박, 차별, 스트레스, 그리고 시선의 감옥.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곳을, 이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다. 디아스포라는 슬프지만 아름답다. 이 곳에서 나고자라 평양, 서울, 도쿄를 거쳐 후쿠오카에서 거진 내 나이에 옥사한 윤동주가 쓴 이 몇 구절은 나를 그저 울게 만든다.

고향집 - 만주에서 부른

헌 짚신짝 끄을고
나 여기 왜 왔노
두만강을 건너서
쓸쓸한 이 땅에

남쪽 하늘 저 밑에
따뜻한 내 고향
내 어머니 계신 곳
그리운 고향집

leaf

2010/07/19 03:10 2010/07/19 03:10

그리고 그간,

'배 떨어진' 대련에서의 첫 사흘, 적응기. 생각보다 잠 자던 중국어는 빠르게 깨어났다. 한국어도, 영어도, 모든 언어가 숨을 죽여야만 하니까. 다만 몸은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했다. 물갈이였는지, 대련을 떠나 도착한 하얼빈에서 지독한 설사를 했다. 이틀이나. 이러다 곧 비행기 타고 돌아가야하는 건 아닌가 싶었는데, 긴 시간의 산보와 광합성의 힘이었는지 몸은 그런대로 견뎌냈다.

하얼빈은 더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끄는 무언가가 있다. 러시아 풍의 건물들 사이를 걸으며, 러시아, 일본, 중국, 조선인이 들끓던, 난장판 20세기 초의 만주벌판을 상상하다. 내가 쏠 이등박문은 없었지만 '쏘아댄' 변기는 많았다.

하얼빈은 시간이 갈 수록 내게 애정을 드러내었다.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던 그 곳에서, 사람들은 내게 말을 걸어주었다. 저녁이 되면 유스호스텔에서 나를 끌고 나가는 중국 대학생들에게 한류 스타들에 대해 '아는척'을 해야했다. 억지로 나를 끌고 월드컵 경기를 보자던 랴오닝 출신 따꺼(형)에게 못 이겨 새벽까지 깨어있어야 했다. 코너킥이, 오프사이드가 중국어로 뭐냐고 물어봤다. 그들이 내게 무얼 물어 볼 때면, 나는 조금 천천히 말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 때마다 다들 짜증을 냈다. 그러면서 불이 다 꺼진 로비의 밤은 지나가고, 새벽 세 시면 해가 밝아왔다. 한 때 시나고그였던 건물에서 지낸 일주일은 매일밤이 그렇게 애처롭고 잔잔했다.

그 곳 유스호스텔에서 청소를 하는 아이가, 매일 아침마다 내가 이 다음 어디로 가느냐고, 언제 가느냐고 물어왔다. 나는 그 때마다 나도 잘 모른다고, 어쩌면 베이징으로 갈 거라고 둘러댔다. 그러다 어느 날 아침, 나는 길림으로 갈 거라고, 오늘 짐을 싼다고 말했다. 내 마음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그 어떤 준비도 되어있지 않지만, 몸은 떠날 때를 안다. 늘 그렇게, 어느 날 아침 짐을 싸고는 터미널로 향하는 것이다.

길림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옆에 앉은 아이는 내게 작은 빵을 하나 건넸다. 고마워 하며 먹고있자니 어디서 왔느냐고 한다. 한국에서 왔는데. 자기네 집으로 가지 않겠느냐고 한다. 나는 우물쭈물하다, 길림에는 아는 것도 아는 이도 없어 좋다고 했다. 할머니, 아빠 엄마, 고모, 두 동생이 사는 집은 두 칸 짜리 방이었다. 생선 요리와 맥주를 먹었다. 모두가 둘러 앉아 저녁을 먹자니, 나는 서울에서도 늘 이런 저녁을 원하지 않았나 싶었다.

그리고 오늘, 연변 조선족 자치구의 연길.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내 족속이 사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고향의 내 족속이 사는 꼬라지가 보기 싫어 떠나왔음에도, 나는 왜인지 몰라도 나의 동류를 확인하고 싶었다. 이 곳은 모든 표지판에 한글이 병기되어 있고, 사람들은 조선말을 쓴다. 냉면집과 개고기집이 많다. 밤에 들른 한 나이트클럽에선 한국에서 온 디제이가 원더걸스와 브아걸을 튼다. 2NE1처럼 입은 여자아이가 김밥천국 아줌마 말투로 말을 한다. 애매한 잔정이 나를 간지럽히는 곳이다.

그 무엇도 오바할 것이 없지만, 또 그 어느 것도 쉽게 넘기기엔 너무 감사한 것들이다. 자주 서울에서의 시간을 회상한다. 그 눅진한 독소같던 나날들, 하루 하루가 아무 하는 일 없이도 버텨내야 했고, 매일 매일이 고문 같았다. 미친듯이 걸었지만 밤이면 그 싫던 내 방으로 다시 돌아와야 했다. 하여 그 때에 비하면 나는 지금 너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분명 내 통장은 오래가지 못할 걸 알지만, 어쨌든 완전하다. 이 사소한 완전함을 이제야 느끼고 좋아한다는 게 우습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이 유동성이, 낮은 비열이, 높은 반응성이 자랑스럽다. 나는 그 누가 내게 말을 걸어도, 내가 그 누구에게 말을 걸더라도 일단 미소를 지은 뒤에 대화를 시작할 재간이 있다. 미소는 작금의 내 무기이다.

연길의 밤은 떠나 온 길림보다, 하얼빈보다 자애롭다. 선선한 바람이 마음을 들뜨게 한다. 그러면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나는 멀리있지만 그들의 하루하루는 정말 눅진하고 고될 걸 안다. 그 삶을 모른 체 하고 도망 온 내가 힐난 받아야 마땅한 것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지 않았다면 나는 사랑을 표현할 수 없었으리라. 나는 무섭다. 불안하다. 하지만,

불안이 없는 마음은 사랑도 연애도 아니다. 애정을 더듬어 찾아가는 것은 마음 속의 외로움을 늘려가는 일과도 같다. - 야마다 에이미, <추잉검>

leaf

2010/07/16 03:07 2010/07/16 03:07

다시.



떠나기 전 날, 역시 잠은 잘 오지 않았다. 거의 가수상태로 눈을 감고 있던 와중 날이 밝았고, 아버지와 아침을 먹었다. 방을 마저 정리하고 짐을 짊어지고 집을 나섰다. 인천항에 도착하는 좌석버스를 타는 곳까지 가는 버스를 탔다. 내린 뒤 정류장 바로 앞에 있는 냉면집에서 한국에서의 마지막 끼니를 때웠다.

버스 정류장으로 오니, 타려는 버스 시간을 잘못 알고 있었던 탓에 어쩔 수 없이 제물포역까지만 가는 버스를 탔다. 그리고 역에서 내려서는 택시를 탔다. 택시가 황량한 항구 안을 가로질러 국제여객터미널에 나를 내려주었다.

표를 사자마자 수속장으로 가서 짐과 여권 검사를 하고, 셔틀버스를 타고는 배에 들어섰다. 아주 낡은 배였다. 곳곳이 녹이 슬어있고, 내장재가 뜯어져나가는. 나는 내 이층침대 자리에 짐을 놓고는, 그제야 숨을 돌리고 갑판으로 나갔다. 배처럼 낡은 인천의 모습.

배가 뜨고는 저녁식사를 하고, 한 두 번 갑판에 나가 바람을 쐬고, 새우깡을 던지면 잘도 받아먹는 갈매기들을 구경하다보니 밤은 꽤 일찍 찾아왔다.

대부분이 조선족 사람들이었다. 대여섯살 되는 꼬마들이 한국말과 중국말을 섞어쓰며 이야기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습관은 중국사람들의 그것이다; 마작, 차, 등등.

냉장고 같이 딱 몸 만한 나의 이층 침대 안에 들어가 커튼을 닫으니 금세 졸음이 쏟아져왔다. 꿈도 아닌 이상한 의식 상태를 헤매다 새벽 두시가 넘은 시간에 깼다.

어둔 객실을 더듬어 갑판으로 나왔다. 날은 구름이 가득껴서, 별빛 한 점 보이지 않았다. 때문에 검은 하늘은 검은 물과 완벽하게 섞여 눈을 크게 떠도 모든 것이 그저 까맸다. 그 무섭도록 어둔 공간을 물 소리와 엔진 소리만이 채웠다. 그 때 나는, 내 안이 가득 차 넘치는 기분을 느꼈다.

아침을 맞았다. 도착한 다롄은 많이 더웠다. 비자를 받고, 항구를 나섰다. 셔틀버스를 타고 다롄 기차역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그 뜨거운 열기 아래 이 무거운 짐을 진 채 내버려졌다.

지도도 없었다. 다만 구글맵에서 확인한, 저 앞 공원 근처 싼 숙소가 몇몇 있다는 걸 알고는 그 곳까지 걸어갔다. 땀이 비오듯했고 거리는 생각보다 멀었다.

화려한 쇼핑몰 앞 작은 그늘, 잠시 짐을 내려놓은 뒤 담배 한 대를 피웠다. 오늘 하루 내 몸 누일 곳 하나 모른다는 사실에서 오는 그 절망감은 은은한 공포였지만, 나는 그 모든 질문들에 대해 답을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여 다시 짐을 맸다.

한 허름한 숙소에서 흥정을 하고는 방을 받으려고 여권을 내미니 외국인은 안된단다. 외국인 숙박이 될만한 '기준'에 못 미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곳은 비싼 곳들뿐이었다. 이 곳에는 외국여행객들이 가는 유스호스텔 같은 곳들이 없다.

그 다음 찾아간 곳, 비싼 가격이지만 창문이 없는 방이 좀 더 싸다. 조금 돈을 더 줘도 나는 창문이 있는 곳에 묵기로 했다. 창이 없다는 건 얼마나 영혼을 말려죽이는 것인지 나는 잘 안다.

땀에 절은 옷을 다 벗고 샤워를 한 뒤, 벌거벗은 채로 침대에 누워 깜빡 졸았다. 자다가 잠을 깨니 마치 이 모든 것이 영원히 여기 이대로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곤 이틀이 지났다. 생각보다 중국어는 빨리 살아났다. 대부분의 시간을 지도와 사전을 들여다본다. 칭다오 맥주와 양꼬치를 많이 먹었다. 아무도 나를 외국인으로 생각하지 않고 심지어 길도 물어보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오묘한 시간 동안 내게 머무는 것은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그 어느 누구와도 개인적인 대화를 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당분간은 별로 하고 싶지 않기도 하다.


'저녁마다 이렇게 하고 싶다.
내면적인 것은 아무 것도 쓰지 말고, 그냥 있었던 사건들만 어느 것 하나 잊지 않고 다 적어볼 생각이다. 내가 버려둔 채 하지 못하고 있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괴롭지만 그래도 나는 잠이 들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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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07 03:13 2010/07/07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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